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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아카이브] 식량 전쟁의 시대를 마주하며

2022-05-30

기후 변화, 시작과 동시에 끝을 예고하는


지난 4월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아니, 따뜻했다기보다는 더웠다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년에 비해 높은 기온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더 이상 우리나라에 봄은 없다'라고 생각했다. 5월에도 이상 기온 현상이 종종 있었지만, 4월에 28도를 넘나드는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어릴 적만 해도 기후 변화라고 한다면 오후에 비가 올지, 일교차를 생각해서 가볍게 입을 겉옷을 챙길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지금은 <기후 변화>라는 네 글자가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공포감을 준다. 인도에서 4월 최고 기온으로 45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그렇다.


기후 변화는 연쇄적인 효과를 보인다. 건조한 대기와 높은 기온은 화재를 불러일으킨다. 고지대에 있던 눈과 얼음이 녹아 저지대 강에 범람을 유발한다. 느슨해진 제트기류로 인해 뜨거운 공기가 움직이지 못해 열돔을 형성하고, 장마전선 또한 한자리에 눌러앉아 한 달 넘게 장마가 쏟아진다. 자료를 찾다 보니, 2018년의 그 뜨겁던 여름과 2020년의 그 지긋지긋했던 두 달간의 장마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이해가 된다.


 어쨌든 기온이 1도 상승했을 뿐인데 전 지구적으로 화재가 발생하고 중위도 지역에서 사막화가 일어나고 폭설, 폭우, 폭염이 끊기질 않으니 '1도 상승했을 뿐'이라며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무서운 것은 세계의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지구 온난화의 마지노선은 1.5도 선'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지금 1도가 오른 것은 '20년 전 배출된 온실가스의 영향'이라는 지적도 있으니, 그야말로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출처]  ‘식량 무기화’ 밀 수출 전격 금지…이러다 라면도 못 먹겠네 - 조선일보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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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무기화, 식량 전쟁의 시대


 다시 인도로 돌아간다. 지난 게시글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영향으로 국제적 밀 가격이 폭발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내용을 소개했다. 뒤이어 온두라스, 오만, 수단 등의 식량 생산국이 콩, 옥수수 등의 수출을 제한했으며 세계 2위의 밀 수출국인 인도가 밀 수출 금지 선언을 했으니 국제적 식량 가격 폭등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밀을 주원료로 하는 사료 가격 또한 함께 올라가 육류시장에 타격이 갈 것이고 기온 상승으로 인해 밀의 재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예측 또한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식량 무기화' 또는 '식량전쟁'이라는 키워드 아래, 먹거리가 국제사회에서 무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직까지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대로 기후 변화가 극심해지고 생산 국가들이 하나 둘 수출을 통제한다면 지금의 '식량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무기는 무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어떤 집단-기업 또는 국가가-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집단은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1973년 영화 소일렌트 그린 스틸 컷]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영화는 다소 극단적으로 미래를 예측했다. 시간적 배경은 공교롭게도 2022년이다. 공간적 배경은 극심한 환경 파괴와 인구 폭증으로 종말 직전의 뉴욕이며, 지구적으로 보자면 해양 플랑크톤의 70%가 사라져 먹이사슬이 끊겼고 약간의 경작지는 소수의 권력자에게 통제되고 있는 상태다. 빈민들은 농사와 사냥을 하지 못해 거대 기업인 '소일렌트'에서 배급하는 물과 약간의 식량으로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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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일렌트 그린> 중 식사 장면. 하나의 기업이 특수한 상황 아래 전 세계의 식량 시장을 독점한 세상에서 신선한 먹거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극중 중산층인 주인공마저 심심한 식사를 하곤 '이런 것은 처음 먹어봤다'라고 말할 정도니까. 별개로 고위층이 식료품점에 들렀다가 소고기 한 조각을 수백 달러를 지불하고 사는 등의 모습도 나온다. 영화는 그러한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며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경고를 보냈다.



미래와 지금 우리 주변


 미리 언급했듯이 다소 극단적인 예측이다. 일어나지 않을 문제를 과장되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 1도 상승한 지구의 기온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자연재해들과 식량의 통제는 아주 가까운 현실 속의 일이다.


[출처]  "30년만에 반찬 출였습니다"...지솟는 물가에 무료급식...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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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무료급식소에서는 벌써 식단에 반찬을 조절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국제적 현상으로 나타난 '식량 안보'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식재료 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운영된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개소 이래 처음으로 반찬 가짓수를 하나 줄여야만 했다. 



[출처] 영국 가면 꼭 먹어야 할 '이 음식'…사라질 위기 처한 이유 -한경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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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상징적인 음식과도 같은 '피시 앤드 칩스'. 하필이면 주 재료 중 어류는 러시아에서, 식용유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품목이다. 이로 인해 1/3에 달하는 음식점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마저 돌고 있다. 이 외에도 2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동아프리카 가뭄 사태, 매년 이어지는 미국-캐나다 곡창 지대의 가뭄... 세계화된 지구에선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낙관적인 견해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의견과, 더 늦기 전에 친환경 에너지로의 변환을 결의하는 움직임도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고,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특정한 누군가의 책임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미 시작되어 버린,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나아가는 기후 변화와 어두운 식량 경제의 전망을 마주한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