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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누가 돌보고 있을까?

2023-02-08


 

 




혼자 지내거나 누군가를 돌보거나


작년 폐지를 주우시며 생계를 유지하는 어르신들을 8명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대화를 나눈 어르신 중 6명은 혼자 살고, 2명은 지병이 있는 배우자를 돌보며 손주 양육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어르신들은 더욱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K 할머니 같은 경우, 가계를 책임지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몇만 원 손에 쥘 수 있는” 일이라면 밤낮없이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돈은 벌어야 하고, 남편도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서 남편을 요양시설에 입소시킬까 고민했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정 방문요양보호서비스도 받아봤지만,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게 성에 차지 않고 남편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할머니가 지금까지 돌보고 있는 것이죠.


또한 어쩔 수 없는 가정 상황으로 초등학생 손녀를 돌보고 있는 B 할머니도 있습니다. 자녀의 맞벌이로 잠깐 손녀를 돌보는 형태가 아니라 함께 사는 형태인 ‘조손가정’입니다. 정부에서 다양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 조손가족의 수는 약 114,211가구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저소득층 조손가족에게 아동양육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현재 약 200명 정도의 아동만 지원을 받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두 할머니뿐만 아니라 제가 만나본 어르신들은 돌봄을 받기보다 여전히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어르신들은 누가 돌볼까요?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이야기하다


 

<돌봄이 돌보는 세계> 책 표지(출처: 동아시아) 



“동시에 나이 든 부모, 어린 자녀,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이들을 돌보는 노동으로부터 탈주하고 싶은 욕망을 점점 더 품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하기 싫고, 누군가 저비용으로 알아서 해주었으면 하는 일, 그것이 돌봄이 처해 있는 정직한 현실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책 <돌봄이 돌보는 세계>는 ‘다른몸들’이라는 사회단체가 주최한 연속 강좌인 ‘교차하는 현실 속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돌봄’을 기반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돌봄이란 큰 키워드를 바탕으로 질병, 장애, 권리로 시작하여 탈성장까지 거대한 담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교수나 활동가, 당사자 등이 한 꼭지씩 서술한 책입니다. 인간이라면 타인의 돌봄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에도 돌봄이 존중받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이 책의 큰 뼈대입니다. 이 책에서는 노인 돌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데, 저는 이 부분을 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돌봄은 지금까지 여성의 일이었습니다. 남성은 밖에서 일을 하고, 여성은 집에서 어린 자녀나 노부모를 돌보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형태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유교문화로 전통적인 효(孝) 사상이 더해지면서 심화됐습니다. 돌봄에서 이미 성별 불평등이 일어난 것이죠. 제가 위에 언급한 두 할머니의 사례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두 할머니도 돌봄이 필요한데, 할머니의 표현대로 자신의 “뼈를 깎는” 심정으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어르신은 주변에 종종 많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있지도, 하기도 힘든 사각지대입니다.




돌봄은 의존과는 다르다


노인을 노린 범죄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고발하였다(출처:그것이 알고 싶다)


K 할머니처럼 남편이 쓰려졌을 때, 사적 돌봄인 가족이 발 벗고 나서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요? 작년 11월 22일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약탈인간> 시리즈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2부에 걸쳐 방영했는데 2부의 내용은 ‘노인 약탈’이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인지증(치매) 노인을 대상을 표적삼아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여 서서히 갈취해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행히 해당 어르신은 자녀들이 자주 왕래하고 부양을 하고 있어 더 이상의 큰 피해는 막았지만, 만약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미 미국과 같은 해외에서는 이러한 범죄를 실버 칼라 크라임(Silver Collar Crimes)로 규정하고, 전문 부서를 창설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 재산이 많건 적건 노인은 돌봄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소득 유무로 쉽게 돌봄 제공 여부를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돌봄이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크게 두 가지가 방해 요소로 존재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단어가 띄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주 사용하는 말이 한 사람의 인식 체계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단어를 살펴보면, 의존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어딘가 자신이 결여돼 있어 이를 채워주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어떨 때는 의존이 ‘무임승차’와 같이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죠. 그래서 말할 때 “힘들 때 나한테 ‘의지’해”라고 하지 “내게 ‘의존’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존은 무언가 무겁고 책임이 큰 느낌입니다. 


이러한 뜻이 돌봄에도 일정 부분 포함되면서, 돌봄이 전반적으로 긍정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돌봄을 받는 대상에게 ‘자립’을 요구합니다. 자립은 자본주의 측면에서는 ‘쓸모’의 개념입니다. 자립하지 않고 의존하고 돌봄을 받는 대상에게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죠. 또한 신자유주의 측면에서도 의존하는 사람은 그들을 위해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자립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아래 내용을 장애인이라 읽어도 좋고, 그 자리에 노인을 대입해서 읽어도 유효합니다.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이 장애인용으로 되어 있지 않으니 장애인은 의존할 수 있는 것이 무척 적습니다. 장애인이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의존할 게 부족하기 때문에 자립이 어려운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두 번째로 돌봄 노동자들의 낮은 처우와 성별 불평등입니다.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인 요양시설,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 등의 낮은 임금, 불합리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분야의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앞으로 돌봄은 나날이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그로 인해 사회적 문제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가 차원에서 제공되고 있는 돌봄이 대부분 여성이 악조건 속에서도 억지로 버텨내고 있어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한 두 가지 외에도 이 책에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문제들이 점차 개선된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장애인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그린 K-드라마(출처: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또한 만약 돌봄이 사회의 중심이 되고 사회적 약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표준 모델이 된다면, 사회적 약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라도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복지선진국의 대표적인 국가(스웨덴, 덴마크 등)들은 이를 전환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작년 뜨겁게 달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우영우를 장애인 관련 정책이나 제도가 발달하고 일상생활 자체가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나라로 함께 이민을 가서 살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빠의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케이팝(K-POP)을 포함한 케이 컬처(K-culture)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케이 복지(K-welfare) 모델 하나는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인데요. 이미 나도 돌봄을 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서로 마음 편히, 언제 어디서든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작은 일상에서 형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개인의 실천적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글_ 우양재단 사업1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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