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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나요?

2023-05-19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매년 1월~2월만 되면 구청이나 복지관 등에 어르신들로 북적북적해집니다. 바로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을 신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자리에 참여하고  매달 27만 원(공익형 기준)을 받기 위해서 신청기관으로 부리나케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신청한다고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쟁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착순이 아님에도  혹시 모르는 마음으로 추운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있기도 합니다. 한 어르신에게 "선착순이 아닌데 왜 이렇게 빨리 오셨냐"라는 제 질문에 "성실성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은퇴를 한 이후에도 성실함을 증명해야 되고, 부지런히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답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럴 바에 애초에 정년을 연장하자는 의견이 시시때때로 나오고 있습니다. 정년 연장을 통해 불안정한 노후를 조금이라도 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정년을 62살에서 64살로 늦추는 내용을 담은 프랑스 정부의 연금 개혁으로 현재 프랑스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프랑스의 많은 국민은 이 법안을 반대하고 파업과 각종 시위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노후가 불안하니 더 일할 수 있게 정년을 연장하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제도를 왜 반대하고 있을까요? 은퇴를 늦춰주면 경제활동을 더 할 수 있어 조금이나마 더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텐데 말이죠.


출처 : OECD



우리나라도 매년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노후보장과 관련된 법과 제도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늦게 발전돼 현재 노인과 앞으로 노인이 될 사람들의 노후가 불안합니다. 그 증거는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노인 빈곤율입니다. 그간 노인 빈곤율은 40% 이상을 유지하다가 2020년 처음으로 38.9%로 30%대로 하락을 했습니다. 이러한 기조가 유지돼 2021년에는 37.6%로 조금 더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단연 1위를 유지하고 있고, 평균 13.5%(2019년 기준)의 2.8배 높습니다. 노인 빈곤율이 하락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기초연금 등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노인 빈곤율을 이야기할 때 짝꿍처럼 함께 이야기하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노인 자살률입니다. 두 지표는 서로 ‘정적 상관관계’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요. 즉, 하나가 상승하면 나머지 하나도 함께 상승합니다. 즉 노인 빈곤율이 높아지면 노인 자살률도 함께 높아지고, 떨어지면 같이 하락합니다. 그러므로 노인의 빈곤을 완화하는 것이 심리정서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노인은 계속 늘어납니다. 노인 인구가 내년이면 1,0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내후년이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가 됩니다. 베이비 붐 세대(1955년~1960년생)는 이미 노인 세대로 진입해 이를 더 가속화하고 이들의 노후 역시 불투명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후보장제도인 국민연금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일할 때 일정 금액을 부담하고, 추후 내가 은퇴했을 때 매월 정해진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보험인데요. 이러한 기금을 정부가 관리하고 운영하며 예측까지 합니다. 이를 재정계산이라고 하는데, 이를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것이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왔습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이 2040년까지는 문제없이 운용돼 정점을 찍습니다. 그러나 그때를 기점으로 적립돼있는 국민연금 기금이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2055년이면 모두 고갈된다고 예측했습니다. 고갈 시점이 원래 2057년이었는데 이마저도 2년이 앞당겨졌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국민연금을 내는 인구(생산가능인구)보다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수급자)가 점점 더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즉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가 문제입니다.




몇십 년 뒤도 문제지만 현재의 노인은 어떨까요? 국민연금은 1988년에 처음 도입되었지만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등 여러 제한이 있다가 비로소 1999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만큼 가입 기간이 길지 않다는 뜻입니다. 가입 기간이 길지 않으면 월 수급 금액도 상당히 낮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인 가입자는 불과 74만 명인 8.4%에 불과합니다. 이중 100만 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 대상은 약 30만 명도 안 됩니다. 즉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보험료를 납부했음에도 현재 받을 수 있는 금액이 100만 원도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88만 원 세대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국가의 사회보험제도로도 노인 빈곤을 완화하기에는 힘듭니다.

 

그래서 많은 노인은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노후에도 마음껏 쉬지 못합니다. 이는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OECD 국가들의 2020년 65세 이상 고용률을 보면 한국이 34.1%로 1위입니다. OECD 평균은 14.7%로 2배가 넘습니다. 이러한 비율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노인은 민간 영역에서 은퇴하고 공공(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노인이 돼서도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처음 제가 이야기했던 프랑스의 국민들은 더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왜 반대할까요? ‘연금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와 ‘국가적 정체성’입니다. 먼저 프랑스는 연금을 볼 때 세대 간 ‘갈등’이 아닌 ‘연대’로 인식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연금 관련 뉴스를 접할 때 세대 간 갈등을 부각합니다.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위해 연금을 내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를 노동 인구가 퇴직 인구를 부양하는 것은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직업과 소득 등에 상관없이 품위 있는 은퇴를 보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연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연금 개혁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은퇴를 죽음을 앞둔 짧은 유예 기간이 아니라 인생의 축복이자 평생의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워라밸’을 굉장히 중시하는 데 은퇴를 역사와 정체성, 또 어렵게 얻은 사회, 노동, 권리에 대한 자부심과 얽혀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은퇴를 인식하는 것과 차이를 보입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은퇴를 생각하면 ‘어떤 게 떠오르냐’는 질문에 ‘쓸모없음’, ‘빈곤’과 같은 부정적 키워드가 가장 많습니다. 눈에 띄는 건 ‘폐지’라는 단어였는데요. 폐지를 줍는 노인이 가난의 상징이 되어버린 사회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즉 우리나라는 은퇴 이후의 삶을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적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노인은 언제쯤 일을 그만두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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